5급 공무원 시험 제도, 현시점에서 지금도 필요한가?

고위직이 고위직으로 이동을 멈추고 이제 실무자가 고위직이 되는 사회 제도를 만들어 가자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학생이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 비율이 2022년 기준으로 73.3%이다. 정부의 고등교육통계 지표에 따르면 2022년 대학교 190개, 학과 12,203개, 학생 1,888,699명이며 전문 대학교의 경우 134개, 학과 6,369개, 학생 539,306명이다. 사실상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어느 정도 공부한 학생이라면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하다. 이렇게 상급 학교에 진학하고 공무원을 희망하는 학생은 공무원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우리의 공무원 시험 제도는 시대에 너무나 뒤떨어져 있다. 우리나라 공무원 임용 제도는 1949년 제정된 ‘고등고시령(대통령령 174호)과 보통고시령(대통령령 175호)를 기반으로 시작되었고 현재 7급, 9급 시험은 보통고시에서 출발하였으며 1981년도에 개편된 것이다.



과거 서울대 졸업한 학생이 9급에 응시하여 동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문에 회자될 정도로 7급, 9급 등의 등급과 관계없이 우수한 인재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그렇지만 7급, 9급은 실무 직원이라 현장에서 배우고 연차가 지나면 위로 올라가 정책 업무를 수행하면 되지만 젊은 나이에 5급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는 경우 실무 현장을 배우지 않고 정책만 하다가 고위직으로 직행하는 제도가 현재에도 필요한지 다시 한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고등교육을 받고 있는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설립한 옛날 옛적에 인재를 모집하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2011년 행정고시라는 용어도 폐기하고 5급 공채로 바뀌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부적합한 제도임이 틀림없다. 암기를 다른 사람보다 더 잘했다고 한번 시험에 합격하면 거의 죽을 때까지 고위직으로 삶을 영위한다.

최근 익명의 블라인드에서 이를 꼬집는 장문의 글이 나와서 와글 와글하다. 글쓴이는 일명 SKY 대학교를 나와서 젊은 나이에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특채로 경찰에 입문하였고 최근 삼성전자로 이직한 그야 말로 밑바닥과 실무 현장을 모르고 고위직에서만 지낸 사람으로 현 시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회자하고 우리나라에서 단숨에 고위직으로 인생 역전하는 시스템이 여전히 필요한 가? 에 대해 지적한 내용이다.


이 글에 대하여 일선에 뛰는 경찰을 무시한 내용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글의 전체 맥락은 그 분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제도를 지적하는 만큼 우리 사회가 한번 고민해볼 만한 문제로 게재한 내용 전문을 그대로 아래에 싣는다.

필자는 고대 법대를 졸업하고 그해 만 23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군법무관을 마치고 경정특채로 1993년 경찰에 입문했다. 당시만 해도 순경으로 들어와서 순경으로 정년퇴직하는 경우도 있었다.

경정으로 특채되니 시기와 질투도 많았다. 변호사하면 돈도 잘 벌고, 검사하면 출세도 할 수 있는데 무엇을 노리고 사법시험 합격하고 경찰에 들어왔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경찰조직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들어와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고위직(총경, 경무관 이상)으로 출세를 하려면 경찰대학교나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경위로 들어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파출소, 지구대, 형사, 수사업무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강·절도 잘 잡고 민원사건처리 잘해도 상관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면 소위 ‘헛방’이다. 이런 풍토 때문에 젊고 유능하다는 경위입직 경찰관(경찰대, 간부후보)들은 경찰청, 지방청의 기획부서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일선 파출소, 지구대, 형사, 조사팀에는 자신들의 동기들도 별로 없고, 민원에 시달리고, 술 취한 사람 등 사건처리에 얽매이다 보면 인사고과도 제대로 못 받고 자칫하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승진 결정권은 윗사람(경찰서장, 지방청장, 경찰청장)이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도 현장경험이 적다는 것이다. 예전에 경위로 출발 치안정감까지 승진한 어떤 분은 자신은 “단 1년도 제대로 파출소 근무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 고위직으로 올라가려면 소위 권력자와 가까운 청와대, 총리실, 경찰청(기획, 인사, 감찰, 외사, 정보, 경비 등)에 근무해야 인사권자에게 가깝고 잘 보일 수 있어 승진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사시특채 출신인 필자도 서장재직시 파출소 근무직원으로부터 “서장님도 순찰봉 차고 근무하는 순경의 심정을 이해하려면 형식적인 체험 대신 순경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쓴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경찰뿐만 아니라 행정고시, 입법고시, 사법고시 방식도 문제다. 젊고 유능하다는 사람들이 고시합격으로 곧바로 5급부터 출발하면 현장에서 접하는 민원인들과 대면접촉 기회가 적다. 형식적으로 결재만 하게 되고 보고서·기획서만 만들다가 승진하면 해외유학을 하고 다시 중앙부처만 근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들 소위 ‘성골’ 출신들은 국민들과 현장에서 접하는 지방자치단체에는 근무를 하지 않는다. 근무를 해도 교통과 교육여건이 좋은 수도권에서만 근무를 선호한다. 중앙부처의 예산을 집행하고 사무를 처리하는 주민센터, 읍면사무소, 구청, 군청, 시청에는 고시출신들이 거의 없고 다만 승진 후 부시장·부지사로 근무할 때 잠시 근무만 한다.

일선현장 집행부서의 근무경험이 적다 보니 현장과 동떨어진 지시를 하고 기획이 내려오는 것이다. 공무원은 승진이 희망이라고 한다. 하지만 승진하려면 다양한 경험과 위험이 도사린 현장보다는 인사권자와 가까이 있고 인사권자에게 비위를 맞출 수 있는 중앙기획부서로 몰려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승진을 빨리하고 국비유학, 해외주재관 파견 등 자기계발기회가 많은 부서로 나가고 정치권 등에 연줄이 닿아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기관의 장관과 차관·국장이 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고위직으로 승진하면 한 번쯤 의무적으로 일정기간 민생현장 접점부서에서 근무를 해보도록 인사시스템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경찰청장 등 고위직 공무원들이 취임하면 말로는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외친다. “승진은 공정하게 할 테니 빽쓰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직원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말하는 고위직 기관장들도 누구의 빽과 연줄로 운이 좋게 승진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데 말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한다. 김영란법의 접대비 3, 5, 10만원 상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사시스템을 바꿔야 비리의 온상인 승진·채용과 관련한 원인을 막을 수 있다. 인사가 만사(萬事)인데 망사(亡事)가 되어서는 안된다

조영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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